너무나 닮은 두스타, 이주일과 김형곤

시사타임l승인2006.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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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상의 대중에게 웃음을 선사하며 하늘나라로 웃음의 무대를 옮긴 두희극스타, 고 이주일씨와 고 김형곤씨.
 

“코미디언 김형곤씨가 죽었대요. 배기자가 한번 알아보세요. 믿을 수가 없어요.”

11일 휴대폰으로 급한 목소리가 전해졌다. 고 김형곤씨를 시사코미디의 대가로 클 수 있게 한 KBS코미디 프로그램의 전 연출자이자 인덕대 방송예술학과 교수인 김웅래교수였다.

설마라는 마음으로 구급차로 옮겨졌다는 서울 혜민병원으로 연락을 한 뒤 그의 죽음을 확인했다. 그에 대한 사망 기사를 쓴 뒤 이용식 등 동료 코미디언들에게 김형곤씨의 죽었다는 말을 건네주자 도저히 믿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그렇게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났다.

그리고 고 김형곤씨가 남긴 홈피에 남긴 ‘대한민국이 웃는 그날까지’라는 글을 읽어내려갔다. ‘온 국민이 웃다가 잠들게 하라’라는 부제의 이글은 “세상에 웃는 것 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많은 사람들은 돈 버는 데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웃지 못하고 산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웃음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써내려간 그의 글을 보면서 떠 오르는 사람은 2002년 8월 27일 우리곁을 홀연히 떠난 대희극 스타인 고 이주일씨다.

고 김형곤씨와 이주일씨는 참으로 닮은 점이 많다. 이들은 고통과 불행, 우스꽝스러움의 코미디의 캐릭터를 맡아 대중에게 웃음을 선사했다.이들은 대중을 눈물이 나도록 웃게 할 줄 아는 진정한 희극 스타였다.

김형곤씨는 죽기직전까지 이달 말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가질 무대공연 준비로 땀을 흘리고 있었다.

폐암으로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질 때 이주일씨는 1999년 폐암 발병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코미디언으로는 최초로 가졌던 코미디 공연을 전국으로 확대시켜 전국순회공연을 가질 계획을 말하곤 했다. 죽는 순간까지 그는 서민을, 국민을 웃길 생각을 했었다.

하늘나라로 웃음의 무대를 옮긴 두 스타는 참 공통점이 많다. 오랜 악극과 가수 리사이틀무대에 간간히 서며 20여년의 길고 서러운 무명생활 끝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와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라며 시청자를 웃기면서 성공신화를 일군 이주일씨, 동국대 국어교육학과(79학번)재학하던 1980년 TBC 개그콘테스트에서 입상(은상)을 계기로 코미디언이 돼 개그 스타로 우뚝 솟은 김형곤씨.

두 사람은 방송에 부적합한 불리한 점을 불굴의 노력으로 극복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적지 않은 나이와 시청자들에게 비호감을 초래하는 외모의 이주일과 혀 짧아 발음이 부정확한 김형곤은 부단한 노력과 불리한 것을 장점으로 활용하는 재치와 아이디어로 최정상의 코미디언으로 부상했다.

두 사람이 대중의 희극 스타로의 비상의 원동력은 끊임없는 노력과 연구였다. 죽기전 이주일씨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코미디 연기가 사는 길은 노력뿐”이라고. 그는“요즘 개그맨들 중에 재주 좀 있다고 잘난 척하는 친구들이 꽤 많은데 코미디는 할수록 어렵다. 우리나라 코미디언중에 몇백 명을 모아놓고 20분 이상 웃길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5명도 안될 것이다. 끊임없이 노력해도 시원치 않을 텐데, 젊은 친구들이 방송 출연과 돈벌이에만 신경 쓰는 것 같아 안타깝다.”

김형곤씨 역시 그를 시사풍자 코미디를 개척하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스타로 떠 오르는 것은 수십개의 신문을 읽고 연구하는 등 진지한 노력 때문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개인적인 크나큰 시련을 겪고 정치로의 외도를 했지만 시련과 외도마저도 웃음의 소재로 활용하는 대중에 대한 희극 스타로서의 소명감 역시 비슷한 점으로 꼽힌다.

이주일씨는 1991년 11월 애지중지하던 6대 독자 외아들이 교통사고로 잃었다. 한 인간에게 가장 아픈 일을 당한 것이다. 아들의 장례를 치르고 사흘 뒤 그는 약속된 무대에 올랐다. SBS 개국특집 녹화였다.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그는 마이크를 잡자마자 “여러분 죄송합니다. 여러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하나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일순간 장내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아들의 사망으로 은퇴한다는 소문이 사실로 드러나는 순간이구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숙연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 동안 김영삼씨와 박철언씨의 관계 개선을 해내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유머를 했다. 관객들은 떠나 갈 듯 웃었다. 그는 자식을 가슴에 묻고 무대에 올라 웃음을 선사한 것이다.

김형곤씨 역시 국회의원 출마했다가 낙선하고 이혼을 해야 했고 연이은 사업실패, 그리고 혼자서 아이를 키울 수 없어 유학을 보내야했던 아버지로서의 아픔을 갖고 있었다.

김형곤씨는 주간조선과의 가진 인터뷰에서 힘들었던 시련을 이렇게 고백한 적 있다.“신은 견딜 수 있는 고통만을 주신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당시 너무 허탈해서 웃음이 자주 나왔는데 거울을 보며 소리내어 웃어보니까 이상하게 용기가 생기고 희망도 보이더라고요. 일이 잘 안 풀릴수록 웃어야 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김형곤씨는 시련에 좌절하기 보다는 그 시련을 발판삼아 다시 무대로 돌아와 연극으로, 스탠딩 개그쇼로, 뮤지컬로 대중을 웃겼다.

“희극 배우는 대중을 웃기면서 죽는 것이 가장 큰 영광”이라는 말을 한 두 스타는 이제 웃음의 무대를 하늘로 옮겼다. 두 스타의 명복을 빌며 하늘나라에서 두 희극스타가 지상에서 함께 공연하며 대중을 웃겼던 것처럼 다시 만나 명연기를 펼치기를 기원해 본다.

[마이데일리 = 배국남 대중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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