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8차 협상이 지난 8일 개최된 가운데 웬디 커틀러 미국 측 협상 수석대표는 한국의 쇠고기 시장이 완전히 개방되지 않으면 한미 FTA가 성사될 수 없다고 경고하였다. 또한 한국 자동차 시장 문제와 관련, 실질적인 개방 수위를 높이는 것이 협상의 최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아울러 쌀을 포함해 모든 농산물을 예외 없이 개방해야 한다는 강경론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실련은 한미 FTA와 관련 없는 의제들까지 이야기하면서 자국의 이익만을 극대화하려는 미국의 이러한 요구들을 우리가 절대 받아들여서는 안 되며, 이를 ‘빅딜’이라는 형태로 수용하여 한미 FTA 협상을 조기 타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쇠고기 전면개방 없이 FTA가 체결 될 수 없다는 미국 측의 주장은 억지에 불과하다.

쇠고기 문제는 우리정부가 소위 4대 선결조건의 하나로 양보하면서부터 FTA협상에서 논란이 되어왔다. 하지만 미국은 지난해 초 한미 농업협상팀간의 회의에서 광우병 병원체가 보유되었을지도 모를 30개월령의 쇠고기를 수입한다면 뼛조각이 포함되지 말아야 한다는 우리 측 주장에 합의한 바 있으며, 수입 재개 후 뼛조각들이 발견된 쇠고기에 대해서는 이 합의에 따라 반환한 바 있다. 또한 미국은 이웃 일본에 대해서는 광우병의 위험이 없고 미국소비자가 가장 선호하는 20개월령 미만의 쇠고기에 한해서만 수입재개를 합의해놓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상 막바지에 이르러서 광우병 발생 개연성이 있는 30개월령 쇠고기에 대해서도 뼈를 포함하여 수입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수입재개 후 뼛조각들이 발견되어 합의에 따라 반환한 정당한 행위를 이제 와서 마치 FTA 협상을 깨뜨리는 것인 양 적반하장으로 우리 정부 측에 뒤집어씌우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통상교섭본부 등은 오히려 미국편을 드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미국의 강력한 입장선회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협상의 조속타결에 연연하는 정부의 태도가 “뼈조각이 있는 쇠고기 수입을 요구한다면 일본의 예처럼 광우병 감염 염려가 없는 20개월령 미만의 쇠고기로 고쳐야 한다”고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태도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쌀시장 개방은 한미 FTA와 상관없이 이미 합의된 사항이다.

쌀시장 개방의 경우 지난 2004년 미국을 비롯한 주요 쌀 수출국들과 개별협상을 벌여 2014년까지 141만석의 쌀을 의무수입(MMA)하고 그 30%를 밥상용 쌀 수입량으로 배정하면서 국별 수입쿼터까지 확정하여 WTO의 승인을 받은 바 있다. 2005년 이 협정이 비준되어 작년부터 쌀이 수입되고 있는 마당에 미국이 이제 와서 더 개방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WTO 협정위반이며, 다른 나라들과의 협상을 처음부터 다시 하라는 상식에서 벗어난 요구에 불과하다.

결국 미국이 쌀 문제를 밀어붙이는 것은 쌀 개방 그 자체에 대한 이득을 노려서가 아니라 이른바 ‘빅딜’을 고려하여 쇠고기, 자동차 등 다른 분야에서 이익을 얻으려는 전략적 공세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내용을 잘 알고 있는 정부가 이를 국민에게 숨기면서 마치 한미 FTA 협상을 위협하는 문제인양 이야기하는 데에 있다. 아무 관련이 없는 쌀 개방문제를 끌어들여 한편으로는 국민들이 협상을 반대하지 못하게끔 ‘엄포용’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협상이 종료된다면 ‘쌀 개방을 막았다’고 협상의 성과인양 선전할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에 대해 ‘배기량 기준의 자동차 세제 개편과 8%에 이르는 관세를 즉시 철폐’하라는 미국의 요구는 협상에 임하는 그들의 오만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미국협상단은 그동안 논의되어왔던 상호간 관세폐지 약속을 180도 뒤집어 수출은 많이 하고 수입은 적게 하는 한국에게는 관세 폐지를 요구하면서 정작 미국은 1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는 기상천외한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미국 측의 논리대로라면 천문학적인 규모의 미국 농산물을 수입하는데 비해 수출하는 물량은 미미한 우리나라의 경우 관세를 서서히 줄이고, 미국은 농산물 수입과세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성립된다.

미국 일정에 맞춘 FTA 협상 조기 타결 시도를 중단하라

한미 FTA와 비교도 되지 않는 규모의 한칠레 FTA 협상의 경우 3년 2개월에 걸쳐 협상한 결과 우리의 피해를 많이 줄일 수 있었다. 현재와 같이 단 1년 안에 미국 측 일정에 맞춰, 미국의 이익을 최대한 챙겨주는 형태로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된다면 국익에 도움은커녕 우리 후손들에게까지 커다란 멍에를 짊어지우는 결과만 낳을 것이 분명하다.

경실련은 미국 의회의 압력을 빙자한 미국 FTA 협상단의 무리한 요구를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빅딜’을 통한 조기타결을 서두를 것이 아니라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합리적인 손익분석을 도출한 후 협상을 재개할 것을 정부에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