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19일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 처리를 무산시키는 결과를 이끌어 냈지만 또 다시 ‘당 지도부 간 충돌’이라는 꺼지지 않을 불씨를 남겼다.

 비교섭 야3당(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중심당)이 제시한 중재안을 김형오 원내대표가 당 최고위원단과 논의하기로 결정하면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듯 했지만 결국 강경론에 밀려 중재안을 거부하기로 최종 결정한 것이다.

 강경론을 이끄는 대표적 인물은 이재오 최고위원. 한나라당이 사상초유의 헌재소장 공백사태를 초래했다는 비판에도 불구, 주장을 굽히지 않은 이유는 이 최고위원을 비롯한 강경파가 당론을 주도했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이날 본회의 시작 전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김 원내대표는 “원내대표인 나에게 믿고 맡겨 달라. 한나라당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최고위원을 비롯해 김기춘, 안상수, 김무성 의원 등 3선 이상 중진의원 10여명이 갑자기 의총장을 빠져나와 본회의장 안으로 들어갔다. 박계동 의원은 곧바로 의장석을 점거했고 피켓시위가 이어졌다. 당의 지침과는 다른 일종의 ‘돌출행동’이었던 셈이다.

 물리적 충돌까지 예상되자 김 원내대표를 포함한 야4당 원내대표는 긴급 회동을 갖고 대책을 논의했다. 김 원내대표는 야3당에게 본회의 불참을 촉구했 지만 역으로 새로운 중재안을 수용하라는 요구에 부딪혔다.

 이재오 “사람들이 농성하고 있는데 하나 둘씩 빼내?” 격노

 한 시간 뒤 김 원내대표는 굳은 표정으로 한나라당 최고위원실로 향했다. 야3당의 제안을 수용할지 여부를 최고위원단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회의엔 안상수 법제사법위원장과 역시 법사위 소속인 주성영 의원 등이 참석해 “한나라당이 법사위 청문회를 수용하는 것 아니냐”는 예상도 나왔다.

 그러나 결과는 김 원내대표와 이 최고위원의 갈등으로 끝이 났다. 김 원내대표는 회의에서 “의총을 다시 열어 중재안 수용 여부에 대한 의원들의 찬반입장을 물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이 격노했다. 책상을 손으로 치는 등 흥분한 이 최고위원의 목소리는 회의실 앞에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의 귀에까지 들릴 정도였다.

 그는 “찬반을 묻는 게 무슨 필요가 있어”, “입장을 바꾼 게 한 두 번이야”, “참는데도 한계가 있다. 사람들이 농성하고 있는데 하나 둘씩 빼면서” 등 강경발언을 쏟아냈다. 

 이 최고위원을 비롯한 강경파가 강하게 반발하면서 야3당의 중재노력은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이 최고위원이 대표 최고위원실에서 먼저 자리를 뜬 뒤 불과 5분만에 내려진 결정이었다.

 열린우리당의 한 당직자는 이 최고위원 주위에 기자들이 몰리는 것을 보고 “마치 한나라당 대표 같다. 강재섭 대표가 돌아다녀도 기자들이 저렇게 까지 붙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후보자 임명동의안 처리를 두고 내내 강경한 입장이었다. 지난 12일 야3당이 처음 제시한 ‘법사위 청문회’ 제안에 대해 강 대표가 수용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이 최고위원 등 강경파가 반대 입장을 고수한 바 있다. 

 이번 사태를 두고 당내에선 지도부간 책임공방이 격해질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당장 야3당은 “한나라당은 이제 치명적인 상황에 처하게 됐다”고 경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