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내 실용주의자들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5.31 지방선거 참패 이후 당의 진로 문제와 관련, 서민과 중산층의 `먹고 사는 문제' 해결을 통해 지지도를 회복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가운데 지도부에 실용주의적 사고를 요구하는 주문이 쏟아져 나오는 양상이다.

김근태(金槿泰) 의장이 25일 오후 지방선거 패인과 향후 당의 진로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마련한 시.도당위원장 간담회에서도 이 같은 당내 분위기가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북도당위원장을 맡고 있는 최규성(崔圭成) 의원은 간담회에 앞서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원인은 서민경제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라며 "이데올로기에 집착하는 것은 옳지 않고,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강원도당위원장인 이광재(李光宰) 의원도 "우리당이 책임있는 집단으로 보이는 게 중요하고, 민생과 경제 부분에 더 집중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과 같은 개별 사안에 대해서도 실용주의자들의 주장이 힘을 얻는 모습이다.

김 의장은 한미 FTA에 대해 "미국이 정한 시한(내년 6월)에 우리가 구속돼선 안된다"며 신중론을 제기했지만, 당내 실용주의자들은 오히려 "경제를 위해서라면 한미 FTA가 체결돼야 한다"며 김 의장을 압박하고 있다.

국회 재경위에 소속된 우리당 의원들은 지난 21일 상임위별로 진행되고 있는 김 의장과의 간담회에서 우리당이 FTA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이 참석자는 "일부 개혁성향의 의원들은 김 의장처럼 한미 FTA에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극소수에 불과하다"며 "당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찬반의원의 비율이 8대2로 찬성쪽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 지도부내에서도 대표적인 실용주의자로 분류되는 강봉균(康奉均) 정책위의장의 경우 반드시 한미 FTA가 추진돼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 정책위의장은 김 의장에게 "미국이 정한 협상 마감시한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김 의장의 발언은 한미 FTA 협상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조언했다는 후문이다.

이와 함께 최근 확산되고 있는 기간당원과 중앙위원회의 권한을 약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비대위의 공식 의제가 된 것도 당내 실용주의 노선의 확산과 맥을 같이 한다는 분석이다.

기간당원제와 중앙위 보완론이 직접적으로 실용주의와 관련된 사안은 아니지만 당내에서 이념적으로 대척점에 있는 개혁파를 겨냥한 주장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김 의장이 취임 후 개혁기조에 실용주의를 혼합한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실용주의 노선을 더욱 뚜렷이 해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당내 여론"이라며 "의원 대다수의 요구인 만큼 김 의장도 수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