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장관, 5대 거품빼기운동본부 상임대표

변양균과 신정아 사건이 한달 째 나라를 뒤흔들면서 시중에는 온갖 억측이 난무하고 있다. 임기 말의 허점을 찾고 있던 언론에게 더할 수 없는 호재였고, 이명박 후보에 대한 검증공세를 피할 궁리로 골몰하던 야당은 역공을 취할 기회를 잡았다. 호사가들은 큐레이터라는 30대 여성과 고위층이 등장하는 스토리에 잔뜩 침을 발라 얘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가뜩이나 민심이반에 허덕이던 노무현 정부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됐고, 측근문제까지 겹쳐 자신에게 유리한 대권지형을 만들려던 계획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이 사건의 영향이 무엇이든간에 이번에 드러난 고위층의 생활태도와 공직자로서 업무자세는 어느 한 개인의 부적절한 처신 차원을 넘어서 국민들에게 깊은 절망감을 안겨주었다. 국민을 위해 사용해야 할 권력을 사사롭게 사용해 온 실상을 보게 된 것이다. 문제는 국민들의 상식적인 판단으로 볼 때 제2, 3의 변양균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추격으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져든 한국경제, 끊임없는 갈등과 대립으로 영일이 없는 우리사회의 현실을 생각한다면 고위층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자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고위층들은 자신들만의 성(城)을 쌓고 특권을 누리기에 바쁘다. 국민들에게는 때때로 장밋빛 환상을 심어줄 홍보자료를 돌리면 그만이었다. 자신들에게 부여해준 권한과 권력을 국민을 위해 행사하기보다 권력을 나누어준 대통령의 심기 살피기에 더 신경을 쓰고, 국민의 고통과 나라의 위기상황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러기에 국민들이 먹고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치는데도 대통령은 경제성장의 수치가 좋다는 한심한 얘기를 되풀이해온 것이다.

청와대 정책실장이나 기획예산처장관 자리는 국민생활과 나라살림을 최종 책임지는 자리다. 모든 경제정책과 나라살림에는 이 책임자의 결정이 없으면 가능하지 않을 정도로 국가운영의 핵심이다. 다른 국무위원과 청와대 참모자리도 마찬가지다. 이런 중요한 자리를 80~90% 차지해 온 고위관료들의 경우 실국장급에서 출세하고, 정치권의 경우 줄서기를 잘한 인물들에게 보상차원에서 임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가끔 있다.

하지만, 고위층사회의 일반적 풍토는 국민들의 생활현실과는 너무나 멀다. 주된 관심사도 다르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교육문제로 골머리를 썩는 반면, 이들의 자녀들은 거의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남의 일일 수밖에 없다. 생활수준의 차이도 크고, 접촉하는 이들이 대부분 재벌과 성공한 기업인들이어서 일반 국민들의 의식과 거리가 멀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몇 차례의 정권이 교체됐지만, 국민들 생활은 여전히 힘들고 어렵다.

왜 민주화운동세력이 정권을 잡았는데도 이런 풍토가 요지부동인가? 그들이 초심을 잃어버렸고 또 몸을 던져 앞장서 헌신한 인물도 없었기 때문에 국민을 위해서 밤낮 없이 일하지 않고 약삭빠르게 처신한 사람들답게 거꾸로 더 쉽게 권력에 취하고 황금에 집착했던 것이다. 경력이 오래 될수록 더 뻔뻔해졌다. 그들 주위에는 출세에 목을 맨 고위관료들이 지연, 학연을 내세워 몰려들고, 권력의 자리를 차지한 뒤에는 그들만의 행복에 빠져 있는 것이다. 권력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고 말해버리면 그만인가? 아니다!

일차적으로 나라꼴이 제대로 되려면 국정을 맡고 있는 고위층이 바로 서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사람들은 정권교체가 되면 하고 기대한다. 그러나 우리 상층부의 실상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런 희망을 버린 지 오래다. 그럴듯한 말로 국민을 속일 뿐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기에 여념이 없는 고위층이 아니었던가. 그러므로 국민들은 자신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지도층을 잘 선출해야 한다. 말로만 그럴듯하게 떠드는 자들, 자신만을 위해 살아온 양심이 마비된 뻔뻔스런 권력욕의 화신들을 지도층의 자리에 앉혀선 안 된다. 이런 바탕 위에서 국민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전문가들을 배치하여 이 난국을 헤쳐가야 이 땅에 희망의 내일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