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속 여인] 클로드 모네의 카미유 동시외

시사타임l승인2016.06.14l수정2016.06.14 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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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색 드레스를 입은 여인(The Woman in the Green Dress 1866)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클로드 모네(1840~1926)는 르 아브르의 시골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에게는 빛의 변화를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시골과 실력있는 외젠 부뎅과 용킨트를 만나 인상주의의 창시자가 될 수 있는 예술가의 눈을 갖게 해주었다.

위의 그림 초록색 드레스를 입은 여인은 모네의 초기 작품으로 1865년 카미유 동시외를 만난지 일년이 지나서였다. 모네는 카미유에게 사랑을 느꼈고 카미유와의 사랑으로 첫아들 장을 낳게 되었으나 모델이라는 천한직업으로 모네의 부모들은 결혼을 반대했다. 더욱이 반대는 모네의 경제적 지원이 끊기는 불상사를 가져다주었던 것이다. 모네는 사랑의 열정을 예술의 혼과 함께 불태우면서 카미유 동시외를 모델로 단 4일 만에 그림을 완성하여 1866년 살롱 전에 출품한 작품으로 꽤 많은 호평을 받았으나, 모델과의 사랑으로 부모의 반대에 대한 상실감과 번민으로 쌓인 돌파구였을까. 그는 카미유를 그리기에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어두운 배경은 모델의 심정과 같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 속에 카미유를 세워 화려하고 긴 녹색의 드레스와 털이 있는 검은 외투로 부유한 여인의 모습인양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나는 모네가 동시외에게 부유함을 줄 수 있다는 무언의 약속 같은 것으로 보고 싶다. 혹시라도 자신의 믿음이 두려운 냥, 화가의 내면을 읽듯, 시선을 의식이라도 한 듯, 멈춰 고개를 돌리는 순간을 화면에 담고 있다. 우아한 카미유는 모네에게 희망적인 미래의 삶을 기대하며 이 드레스를 입었을까? 드레스 위에서 물결치는 파도처럼 흔들거림이 카미유의 다가올 앞으로의 삶의 여정같은 것.

옆으로 돌려 고개 너머로 보이는 그녀의 얼굴에는 다가올 슬픔 같은 것이 쓸쓸하게 느껴진다. 모델의 천한 신분으로 결혼을 승낙 받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자괴감일까? 자신의 처지를 용서할 수 없다는 내적 심정을 그림을 통해 관람자에게 보여주는 듯하니,  자기연민에 빠졌을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내 맘에 여운이 깊어짐이 심금을 울리는 것 같다.

모네와 카미유는 1867년 큰아들 장을 낳았고 1870년에 결혼식을 올렸으나 카미유의 자궁암으로 1879년 숨을 거두었다. 화가와 뮤즈로서 만난 모네와 카미유는 열열한 사랑뿐만 아니라 그림 속에서도 모네가 카미유에 대한 사랑이 녹아내리고 있다. 서른두살에 숨을 거둔 카미유는 죽는 날까지 모네에게 남편을 위한 뮤즈로서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화가들은 일반적인 여인보다는 삶의 역경에서 끗끗하게 이겨나가는 여인들, 그들의 변화물쌍한 삶의 여정을 보며 매력을 느끼고 그곳에서 영감을 얻기 때문에 가족의 반대에서 무릅쓰고 사랑과 결혼으로 세상에 걸작을 남겼나 보다.

▲ 기모노 입은 까미유(Claude-Monet-Japan_s-Camille-Monet-in-Japanese-Costume 1876)

클로드 오스카 모네는 빛의 마술사라고 한다. 이 그림은 평면적인 구도와 디자인적이 요소와 강하고 화려한 색채로, 카미유보다는 의상에 그려져 있는 무사가 더 주인공 같은 느낌의 기모노를 입은 카미유이다. 자포니즘이 유행했던 19세기 중반이후 20세기 초까지 유럽의 많은 화가들은 우키요에의 강렬한 색채, 디자인적인 화면구성, 소묘력 등으로 일본 미술의 영향과 일본풍과 그 취향을 즐기고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마치 우리가 명품을 즐기고 선호하고 갖고 싶어하는 것처럼 말이다.

인상파 화가 모네, 고흐, 드가 등이 그림 속에 우키요에의 그림들을 자신의 그림 속에 넣기도 하였다. 일본의 풍속을 소재로 하여 그려진 그림을 물건을 보내는 포장지로 사용되면서, 물건을 싼 포장지를 받아본 유럽인들은 강렬하고 화려한 디자인적이며 평면적인 일본화의 그림에 매료 되었다. 포장지 대용으로 사용된 그림이 그려진 종이는 물건을 받은 사람들의 눈에 띄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유곽(창녀를 두고 매음 영업을 하는 집)의 모습이나 기녀, 가부키(일본 고전연극으로 노래, 춤, 연기가 함께 어우러지는 공연예술), 스모 등 서민문화의 풍속그림이 널리 퍼지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이 자포니즘(japonisme)이다.

▲ 서양화가 베로니카 유 미

기모노를 입은 카미유는 상기된 표정으로 춤을 추고 있고 벽에 장식된 부채도 움직임을 동반한다. 화려하지만 화려함속에 그녀의 미소가 묻히고 있다. 카미유가 자궁암으로 1879년 죽었다면 이 그림은 3년전에 그린 것으로 보게 되는데 우리들에게 다가오는 암이라는 병은 아픔과 고통을 느꼈을 땐 죽음의 그림자가 깊숙이 들어왔을 때라고 한다. 그러면 활짝 웃는 카미유는 고통을 숨기고 있는 것인가? 모네가 경제적으로 매우 힘들다보니 예술성보다는 돈이 되는 그림으로 카미유에게 당시 유행했던 자포니즘의 영향을 뿌리치지 못하였나 보다. 카미유는 활짝 웃고 있지만 그들 부부의 어려움을 애써 웃음으로 보여주는 그림으로 모네의 카미유 사랑이 절절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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