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여행 (1) - 충북선 공전역

충북선의 역사(歷史)-상편 김영열 기자l승인200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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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안학교로 바뀐 공전초등학교
제천을 출발해 충주, 청주를 지나 조치원으로 이어지는 충북선은 1921년 조치원-청주 구간이 처음 개통되었다. 충북선을 만든 이유는 많은 이야기들이 떠돌고 있지만 일제 강점기에 ‘농수산물 수탈’이 주목적이었다는 것이 거의 정설인 듯하다. 결국 일본인들은 그들이 주장하던 ‘조선 오지의 산업개발’이 아니라 내륙지방에서 생산되는 쌀, 벼, 연초, 석재, 석탄 등을 옮기기 위한 교통수단으로 활용한 것이다. 물론 특산물을 가져만 갔던 것은 아니다. 당시 내륙지방으로 운송이 쉽지 않았던 소금이나 공산품등을 만주선과 경인선을 거쳐 청주, 청안(지금의 증평)에 실어 나르기도 했다.

   
▲ 지방도로와 같이 달리는 무궁화호 열차
이후 충북선은 1928년 청안에서 충주까지 연장했고, 더욱 편리해진 교통을 이용해 일본인들이 충주로 몰려 들었다. 열악했던 교통환경이 철도를 개통하면서 충북지역에 산업, 경제구조를 바꿔놓게 되었다. 청주와 제천이 중심이었던 산업환경이 충주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계기를 제공하게 된 것이다. 충주를 중심으로 경제권역을 만들었던 충북선은 1958년 제천 봉양까지 연장하면서 경부선과 중앙선을 잇는 간선철도 역할을 하게된다. 비로소 총 연장 129.2Km에 이르는 충북선이 완성된 것이다.

그러나 충북선은 중부내륙지역의 경제적 성장과 문화발전에 크게 도움을 주진 못했다. 해방 이전에는 일본인들의 유입경로가 되었고, 해방 이후에는 중앙선과 경부선을 잇는 단순한 산업철도의 기능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 자영양당 고택
   
▲ 건너편 보이는 건물이 자영양당 기념관

충북선 18개의 역 중 제천 공전역은 가장 한가로운 역이다. 제천에서 봉양읍을 지나 박달재터널입구에 다다르면 왼편으로 원박리로 향하는 길이 있다. 길을 따라 접어들면 구불구불한 전형적인 농촌풍경이 펼쳐지고 시오리쯤 지나 지금은 대안학교가 들어선 공전초등학교가 보인다.

길을 따라가면 ‘도대체 역전이 어디있다는 것’인지 의아할 정도로 한가로운 시골풍경에 열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시멘트로 포장된 길 양쪽으로 누렇게 고개숙인 벼들이 가을들판에 아름답게 펼쳐진다. 얕트막한 농촌가옥 담벼락엔 호박이 걸려있고 지금은 쉽게 볼 수 없는 진한 자주색 함석지붕들도 군데군데 눈에 띈다. 이 한적한 시골마을 공전1리에서 제일 큰 집은 조영남씨가 불렀던 유행가처럼 ‘공전초등학교와 예배당’이다. 하얀 뾰족지붕에 걸쳐진 십자가보다 높은 건물은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다. 철길과 마주달리는 농로길에 접어들자 비로소 ‘역전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널목에 다다르자 우측에 자영양당 기념관이 보인다. 자영양당은 지방기념물 37호로써 조선후기 성리학자인 성재 유중교(1821∼1893)가 조선 고종 26년(1889)에 자양서사를 세워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었다.

   
▲ 공전역 이정표
고종 32년(1895년)에는 의병장인 의암 유인석이 8도유림을 모아 비밀회의를 하던 곳으로 1906년에 이소응의 주도하여 화서학파에서 존중하는 선현들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자양영당’을 창건하였다. 여기에 주자, 송시열, 이항로, 유중교의 영정을 모시고 후에 유인석, 이직신의 영정을 추봉하여 춘추로 제향하고 있으며 성재, 의암이 살던 옛 집도 바로 옆에있다. (자양 - 주희의 호)

자동화된 간이 건널목에 경종소리가 요란스럽게 울어대고 차단기가 서서히 내려오는것이 열차가 통과함을 예고했다. 무궁화호 열차였다.
우리나라에 김천-가은선과 전라선 등 동서로 횡단하는 철도가 몇 있지만 충북선처럼 활동이 많았던 철도는 없었다. 지금처럼 시원스럽게 뚫린 도로도 없었고 내륙지방의 많은 산들이 도로를 만들 수 있는 조건을 가로 막았기 때문이다.

   
▲ 공전역 입구
비둘기호와 통일호를 거친 지금의 충북선 열차는 무궁화호로 전면 교체되어 운행하고 있다. 하루에 8회를 왕복하는 무궁화호는 풋풋한 시골냄새를 실어나른다. 그러나 충북선은 사람만 실어나르는 것이 아니다. 그 옛날 시멘트와 석탄 등 많은 광물들을 싣고 달렸듯이 지금도 화물이동이 주된 임무중 하나다. 무궁화열차보다 많은 화물열차 운행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곧게 뻗은 제천천 뚝방길 끝에 다다르자 방앗간이 보이고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보였다. 오던길을 따라 더 내려가면 영화 박하사탕이 만들어진 철다리가 나온다. 비스듬히 서있는 이정표는 수식어 한줄없이 공전역과 화살표가 전부다. 길 양쪽에는 누런 벼들로 들어찬 논이 펼쳐지고 승용차 한대가 겨우 지날수 있는 좁다란 농로길을 따라 들어가면 역전이란다. 마을 뒷산이 버티듯 서있고 미루나무가 병풍처럼 에워싼 곳이 공전역임을 알 수 있다.

   
▲ 대합실을 지나야 마을로 들어설 수 있다.
시골집 담장사이로 빼꼼히 보이는 공전역은 사람의 발길이 뜸한 한가로운 역으로 다가왔다. 강아지가 역 앞 광장을 독차지하며 뛰어 다니고 대합실을 지나야 비로소 마을로 들어설 수 있는 공전역은 하루 8회의 무궁화호 열차 중 세번만 정차한다. 여늬 역처럼 객찰구가 따로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마을길 걷듯이 오가면 되는 곳이다.

지난달 문화재로 지정 예고한 12개의 간이역보다 더 한가롭고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 공전역의 누런 황금들판의 가을녘 풍경은 한폭의 풍경화로 다가왔다.

[글/사진 김영열]sisatime6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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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열 기자  sisatime6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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