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테러가 21세기 한국 사회에 부활했다.

흉기를 사용한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이후 처음이다. 테러 대상은 공교롭게도 박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다. 박 대표 얼굴에 60여 바늘을 꿰매는 상처를 입힌 살인에 가까운 테러다.

정치인 테러의 양태는 다양하다. 하지만 표면적으론 단순 우발사건처럼 시작된 공통점이 있다. 역사를 왜곡한다는 결론도 언제나 같다. 미 대통령이었던 존 F 케네디와 로널드 레이건을 각각 저격했던 리 하비 오즈월드나 존 힝클리의 비밀 음모는 밝혀지지 않았다. 박 대표 테러사건 역시 어디로 향할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정치인에 대한 테러는 1945년 해방과 곧 이은 정부수립 과정에서 잇따랐다. 송진우.여운형.김구 선생이 차례로 총탄에 희생됐다. 하지만 사회가 안정되며 생명을 위협하는 '흉기 테러'는 사라졌다. 70~80년대 테러 수단은 각목으로 바뀌었다. 90년대엔 밀가루나 페인트를 던지는 '정치적 시위' 수준이었다.

그런 만큼 '테러 부활'보다 '테러 등장'인 셈이다.

정치 테러는 이념이나 사회 갈등이 최고조에 달할 때 주로 정치적 소외세력에 의해 이뤄진다. 테러리스트는 한쪽 편에 붙어 상대편에 타격을 주기 위해 증오와 공포감을 확산시킨다.

흑백 대결이 심했던 60년대 미국은 분열된 사회의 상징으로 꼽힌다.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그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차례로 암살당했다.

60년대의 미국은 한마디로 정치 테러에 의해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위축된 시대였다. 톰 행크스가 주연한 미국 영화 '포레스트 검프'가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좌우 갈등이 격렬했던 한국의 해방정국도 정치 테러로 심각한 비용을 치른 시기였다.

정치 테러가 등장한 배경은 심화된 편 가르기와 무너진 법질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숭실대 강원택(정외과) 교수는 "사회 양극화가 심화한 데다 우리 사회가 정치적 타협에 익숙지 않다 보니 개인적 불만이 과격한 수단으로 나왔다"고 해석했다.

전북대 신기현(정외과) 교수는 "정치 지도자가 상대방 공격에 몰두하는 정치 현실이 테러의 먼 원인"이라고 했다. 정치권의 갈등 지향 분위기가 '내 판단과 이해관계'로 선악 기준을 몰아간다는 얘기다.

여기에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 시위에서 볼 수 있듯이 경찰과 군인이 시위대에 두들겨 맞는 공권력 불신이 사회 기강 이완을 불렀다는 해석이 나온다.

문제는 테러가 또 다른 테러를 부른다는 끔찍한 사실이다.

21일 부산에선 지방의원 후보에게 낫을 휘두르는 유사 사건이 발생했다. 테러의 악순환은 갈등과 증오를 키워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이념 대결과 사회 분열을 깊게 한다. 게다가 사회 갈등이 극단적으로 표출되는 대선이 코앞에 다가와 있다.

경남대 김용복(정외과) 교수는 "테러 탓에 정치세력 간 대립이 이번 선거과정에서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며 "테러가 정치투쟁의 새 방식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기현 교수는 "케네디 암살사건은 4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배후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며 "동료, 반대 정당, 군부, 기업체는 물론 소련과 쿠바까지 의심의 대상이 되다 보니 사회적 갈등과 불신이 증폭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