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주민소환제, 다시 쓰는 한국정치사

'제도적 민주화'에서 '실질적 민주화'로 시사타임l승인2006.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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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일 주민소환제 관련법의 국회 통과는 한국 근대 정치사에 상징적 의미와 동시에 실질적 의미를 갖는 사건이다.
 
  한나라당이 국회 본회의에 불참하는 바람에 정치권 전체의 축복 속에 통과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것이 주민소환제 도입의 의미를 반감시키는 것은 전혀 아니다. 정치권은 이미 지난 2005년 3월 9일 투명사회협약을 통해 주민소환제의 도입에 합의했기 때문에 한나라당의 당일 불참이 주민소환제에 대한 반대로 해석될 수는 없는 것이다.
 
  주민소환제는 약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미 거의 모든 정당들이 2001년 이후 지속적으로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기에 초당적인 지지를 받는 제도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초당적 지지에는 주민소환제가 갖는 명분 이상의 실질적인 배경과 동인이 있다.
 
  주민소환을 불러들인 민선지방자치 10년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는 지난 4월 19일 여론조사기관인 리서치플러스에 의뢰하여 투표권을 가진 전국의 일반인 1500명과 전문가 300명을 대상으로'지방선거 투명성 조사'를 실시했다. 설문 중 주민소환제에 대한 응답결과는 매우 '경악'스러운 것이었다. 부패한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소환하는 주민소환제의 도입에 일반 응답자의 절대 다수인 93.1%가 지지를 표명했던 것이다. 전문가들의 경우는 이보다 더 높은 97.9%가 주민소환제의 도입에 찬성했다. 중요한 것은 정당성향이나 지역과 무관하게 주민소환제에 대한 찬성비율이 압도적이었다는 점이다.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의 주민소환에 대한 이러한 압도적 지지를 이끌어낸 동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그 자신이었다. 민선지방자치 10년은 지방행정과 지역발전에 적지 않은 성과를 낳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지방자치를 갉아먹는 커다란 문제점을 양산했기 때문이다.
 
  부패와 비리, 부정선거 등으로 민선 1기 단체장 가운데 23명이, 민선2기에서는 248명의 광역 및 기초단체장 가운데 58명이 각각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민선 3기의 경우 248명의 자치단체장 중 74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지방자치단체를 견제해야 할 지방의회가 자신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것은 물론 적지 않은 지방의원들이 부정과 비리에 연루되었던 것이다. 91년 기초단체에 지방의회가 만들어진 이후 지금까지 근 800명이 각종 비리 혐의로 기소된 셈이다. 비리로 구속된 지방의회 의원의 경우 1기(91~95)때는 164명이었으나, 4기(02~04)때는 293명으로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
 
  부패, 선심 그리고 빚더미의 방정식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의 부패와 비리는 개인적 차원에서 끝나지 않고 종종 지방자치단체에 커다란 피해를 안겨 왔다. 민선 이후 인사, 재정, 정보 등의 막강한 권력을 독점한 지방자치단체장과 지역토호세력의 결합은 막대한 예산과 행정력 낭비 그리고 난개발과 환경파괴 등으로 이어져 지역주민의 삶에 커다란 피해를 초래해 왔다. 막대한 선거비용 조달해야 하는 단체장들이 인사권을 악용해 내부기관에서 은밀한 장사를 하거나, 선심이나 보은 혹은 비공식 경로를 통해 이권을 토호들에게 파는 부정한 거래가 반복되어 오곤 했다.
 
  예컨대 민선 이전인 95년에 지방자치단체의 행사성 경비는 570억 원이었지만, 97년 1231억 원, 2000년 1583억 원으로 대폭 증가해 왔다. 지난해 전국에서는 900여 개의 축제가 자치단체 주관으로 열렸다. 이는 한 자치단체 당 한해 평균 3.6개의 행사를 개최한다는 것인데 수천만 원에서 수십억 원의 예산이 지원되는 이 행사들 가운데 흑자를 내고 있는 행사는 소수에 불과하다.
 
  중앙선관위는 2004년 말 전국 지자체의 주요 사업계획과 예산 중에서 선심성이나 선거운동용 의혹이 있는 ▲축제, 체육대회, 기념행사 등 573건 ▲시·군·구정 홍보 관련 113건 ▲노인정 등 위문 관련 91건 등 모두 777개 사업을 적발하기도 했다.
 
  이러한 선심공세가 지방재정에 결코 유리할 리 없다. 96년 62.2%였던 지방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2005년 56.2%로 떨어졌다. 250개 지자체 가운데 87.6%가 재정자립도 50%에 못 미쳤다. 지방세 수입으로 인건비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지자체도 전체의 56%나 되지만 여전히 계속되는 선심과 보은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재정누수는 멈추지 않고 있다.
 
  처벌과 징계의 사각지대 = 지방자치단체장
 
  사태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의 비리를 효과적으로 견제할만한 수단은 전무했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장을 규제할 수 있는 수단은 형식적으로도 존재하지 않았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 국회의원에 대한 징계조항은 있지만 지방자치단체장의 경우 징계에 대한 규정이 아무 것도 없었다.
 
  1949년에 제정된 지방자치법에서는 제한적이나마 임명직 기초단체장에 대한 파면소추가 인정되었고, 그 뒤 징계제도로 변형되었지만 1988년 지방자치 부활 당시 지방자치단체장에 대한 징계제도는 완전히 누락되었다. 따라서 다른 선출직 공무원들과 달리 지방자치단체장은 지금까지 법령을 위반하거나 부패행위를 하였다 하더라도 징계할 방법이 없는 예외적 특권 지위를 누려왔다고 볼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가 각각 상대에 대한 해산권과 탄핵소추권이 없고, 더욱이 지방의회라는 대의기관이 주민직선으로 선출된 단체장을 탄핵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부적절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장에 대한 가장 적절한 견제주체는 그를 선출한 주민 자신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금번의 주민소환제 도입은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주민통제'라는 지방자치 본원의 회복이라 할 수 있다.
 
  투표로 정지된 민주주의의 재생
 
  주민소환제의 도입은 무엇보다도 한국 민주주의가 제도적 민주화에서 실질적 민주화의 단계로 전환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사건이다. 1987년 대통령직선제 도입 이후 제도적 민주주의는 상당한 정도로 한국사회에 정착해 가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집약적으로 진행되어 온 선거과정, 정치자금, 정치조직에 대한 대수술 작업은 그 핵심에 위치한 정치인 자신에 대한 개혁을 목전에 두고 좌절해 왔다.
 
  직선제 부활 이후 강화된 제도적 민주화과정의 맹점은 투표로 모든 절차가 종료된다는 것, 그리고 다음 선거까지의 기간은 온전한 정치의 실현이 아니라 또 다른 선거를 위한 예비선거판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투표는 민주주의의 정지이자 또 다른 투표를 위한 예비투표 행위에 그쳐 지속가능한 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가 생존할 수 있는 토양이 형성되지 않았다.
 
  주민소환제는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진정한 정치의 복원, 지속가능한 민주주의의 시발, 정치개혁의 마지막 성역인 정치인을 향한 시민들의 본격적인 선전포고라 할 수 있다.
 
  대립과 갈등보다 대화와 합의 높이는 주민소환제
 
  주민소환제는 무엇보다도 선출직 공무원들의 청렴성을 강화할 수 있다. 주민소환제는 도입 그 자체만으로도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고도 버젓이 자신의 자리를 고수했던 기존의 잘못된 관행에 커다란 경종을 울릴 것이다.
 
  두 번째로 지방자치에 대한 주민참여가 높아질 것이며, 주민통제의 강화로 그 동안 붕괴되었던 지방자치의 견제와 균형이 복원될 것이다. 주민소환제의 도입으로 단체장과 의원들은 일방통행식 폐쇄형 정치에서 주민들의 참여를 높이고 주민과의 소통을 강화하는 정치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기존의 자치단체장의 제왕적 권력에 대한 견제장치 부재상황이 사라지고 자치단체에 대한 주민들의 직접통제가 강화되어 진정한 의미의 견제와 균형이 실현될 것이다.
 
  세 번째로 주민소환제의 도입으로 지방자치단체가 견실해질 것이다. 감사원 조사에 따르면 선심성 사업만으로도 2000년 이후 약 4000억 원의 지방자치단체 예산이 낭비되었다고 한다. 주민소환제의 도입으로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에 대한 견제가 강화되어 불필요한 선심성 사업이나 특정 지원세력만을 위한 보은성 사업이 줄어들어 재정건전성이 호전될 것이며, 부패나 비리로 인한 지방자치단체의 손실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네 번째로 주민소환제는 일부의 기우와는 달리 지방정치에서 대립과 갈등보다는 대화와 합의수준을 높여 지방정치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다. 기존과 같이 특정 정책과 사안에 대한 자치단체장의 밀어붙이기 방식은 주민소환제 시대에는 애용될 수 없을 것이다. 특정정책에 한정된 주민들의 불만이 자칫 전체 정책의 부인, 즉 지방자치단체장에 대한 소환과 탄핵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주민소환을 회피하기 위해서라도 갈등사안과 논란 정책에 대한 합의과정이 한층 강화될 것이다. 이는 지방정치에 대한 주민참여를 활성화하고 광범위한 의견수렴과정을 활성화해 지방정치의 수준을 한 단계 제고하는 데에 기여할 것이다.
 
  참여의 과잉보다는 과소가 더 문제
 
  이제 갓 통과되어 시행도 되지 않은 제도를 놓고 벌써 한 쪽에서는 남용의 우려를 제기하기도 한다. 특히 정치적 반대세력에 의한 주민소환제가 악용될 소지가 높으며, 남용을 막기 위한 제도적 보완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부패나 비리와 같이 소환사유의 구체적 한정, 시도지사는 유권자 10% 이상, 기초단체장은 유권자 15%로 규정한 소환요건의 강화, 비용부담 강화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미국, 독일, 일본 등 주민소환제가 오래전부터 시행중인 나라들의 경우도 나라별, 주별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소환요건이 한국에 비해 강하다고 볼 수 없으며, 소환사유 역시 특정하게 제한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다만 한국의 정치문화가 여전히 후진적이기 때문에 현행 주민소환제를 보다 엄격하게 보완해야 다는 주장은 충분히 고려될 필요가 있다.
 
  이 경우에 있어서도 최근 몇 년간의 정치개혁 노력을 살펴보면 한국의 정치문화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는 점 또한 고려돼야 할 것이다. 일부 미국의 언론이 지적하는 한국의 '신생' 민주주의는 여전히 서투를 수 있지만 고위공직자나 거대기업 총수들의 비리에 대한 한국사회의 대처는 어떤 측면에서는 '확립된' 민주주의 하에서의 대처 보다 더 엄격하다는 점에 대해 굳이 인색한 평가를 내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주민소환제 도입으로 비용이 증가할 것이라는 주장도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들의 비리나 선심성, 보은성 예산낭비와 주민소환제 시행 간의 대차대조표를 작성해 본다면 별로 설득력이 높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주민소환제에 있어서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문제는 참여의 과잉보다는 참여의 과소다. 주민발안제나 청구요건이 수백 명에 불과한 주민감사청구제 등도 여전히 활용도가 매우 낮은 형편이다. 따라서 주민소환제가 법은 통과되었지만 과연 이 제도가 제대로 활용될 수 있겠느냐는 고민은 여전히 우리 앞에 남아 있는 과제인 셈이다.
 
  '남용의 우려'라고? 정치문화부터 바꾸고 얘기하라
 
  일단 주민소환제에 대해 주민들에게 적극적인 교육과 홍보가 필요한 것이 현재 상황이다. 주민소환제의 도입배경과 취지, 활용용도 및 방법 등에 대한 올바른 교육이 필요하며, 매뉴얼 발간과 교육회 등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단체들의 주민소환제에 대한 적극적인 캠페인 활동이야말로 주민소환제에 대한 남용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주민소환제의 남용이 우려된다면 이를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지방행정, 의정, 재정에 대한 주민참여를 강화하고 확대해야 할 것이다. 주민들이 지방정치와 행정, 의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하게 된다면 대화의 장과 소통의 계기가 확대되기 때문에 갈등과 대립에 의해 유인되는 주민소환의 남용은 충분히 방지될 수 있을 것이다.

형식뿐인 각종 위원회에 대한 시민참여 공모실시, 지방행정과 의정에 대한 시민들의 자발적 모니터링에 대한 지원, 정책제안과 실현과정에의 시민참여 확대 등으로 지방정치와 행정, 의정이 시민과 소통한다면 주민소환의 동기는 상당한 정도로 상쇄될 것이다.
 
  후진적 정치문화로 인해 주민소환 제도가 악용될 것을 우려한다면 주민소환 제도의 악용을 걱정하기에 앞서 정치문화 자체를 개선하는 것이 우선일지도 모르겠다. 후진적 정치문화와 환경의 개선에 시민들의 몫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이는 주로 정치권의 몫이다.

공천비리, 흑색선전 등 불신과 후진성을 확대재생산하는 기존의 정치관행을 개선한다면 주민소환제나 주민투표제는 건실한 정치인을 위협하는 무기가 아니라 특정 이익집단으로부터 지역의 이익과 행복을 지켜내는 든든하고도 강력한 방패가 될 것이다.  
    
 김정수 /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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