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복 5대거품빼기운동본부 상임대표, 전 보건복지부장관

필자는 1년에 몇 차례 기존 의료기관에서 포기한 환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특강을 해왔다. 정부의 보건의료정책을 진단하고 개선방안을 주로 얘기하는 자리이다. 그곳에서 환자들의 간절한 눈동자를 쳐다보고 있으면, 가슴이 말할 수 없이 답답해지곤 한다. 들어보지도 못한 갖가지 방식으로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는 환자와 가족을 만나서 절망과 싸우고 있는 그들에게 위로의 몇 마디를 건네지만 그게 무슨 힘이 되겠는가. 하루하루 죽음과 대변하거나 고통에 몸부림치는 이들에게 필자는 지극히 무력한 존재일 뿐이다. 그들을 만나고 나면 가슴에 돌덩이를 얹어갖고 온다.

7천억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의약품이 매년 쏟아지고 있건만, 어째서 이 많은 환자들에게 소용이 없는가? 건강보험 덕분에, 또 훌륭한 의사 덕분에 많은 이들이 죽음으로부터, 병으로부터 해방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환자들의 죽어가는 현실을 바라볼 뿐 의사와 병원과 제약회사도 어쩌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주변사람들에게 인간들을 치유할 수 있는 세계적인 치유센타를 한번 만들어봤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건 그야말로 희망사항이었다. 그럴만한 최고수준의 명의나 기공의 고수, 세계적인 약리학자들을 많이 알지 못하고 있고, 치유센타를 세울만한 자금도 없다. 그러니 그런 꿈은 ‘환자공동체’를 다녀올 때마다 마음에 생기는 부담을 덜어내기 위한 도피처였을 따름이다.

그런데 최근 세계 최고수준의 한 약리학자를 만나고 나서 좀더 깊은 고민을 하게 됐다. 아직까지 치료약이 없는 루게릭 환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서울대 의대에서 힘든 3상시험까지 성공적으로 끝내고 그가 발견한 치료물질로 3~7개월 시한부 생명이 개선되게 된 것이다. 식약청의 허가가 나면 한국에서 개발한 신약이 세계 난치병 환자들에게 희망을 만들게 된다. 그가 발견한 치료물질은 동물실험 결과 뇌경색 등 뇌질환과 심장마비, 대장암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상시험을 통해 독성과 유효성 등을 정밀하게 시험해봐야 최종 판단할 수 있겠지만 이제까지의 경과로 보면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물론 수십년 연구해서 치료후보물질을 발견해 동물시험 결과가 좋다고 해서 시험과정에서 같은 결과가 나온 경우는 매우 적다. 실패할 확률이 더 높다. 하지만 이 난치병 중 난치병인 루게릭 환자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신약에 사용된 물질이라면 파킨스병이나 치매 등 인류의 고통인 난치병에 도전해볼만 하다. 이 물질은 독성의 문제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일단 전망이 긍정적이다. 그리고 약효의 크기가 어느 정도냐가 문제이기 때문에 동물실험 결과대로 나오지는 않겠지만, 기존 약보다 약효가 뛰어나다. 이 분야의 치료제는 세계적인 다국적사들이 한국시장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어서 시급히 한국산 신약이 나와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치료물질을 시험하고 발전시켜가는데 엄청난 자금이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난치병은 대중적인 질병이 아니어서 약품이 시장성이 없으므로 상업적인 제약사들이 투자하려고 하지 않는다. 미국이나 선진국들은 난치병 치료의 임상비용을 정부가 부담하기도 하는데, 한국은 그런 제도가 없고 외국에서 수입해오는 약을 지원해줄 뿐이다.

환자들의 생명이 촌각을 다투고 치매환자를 위해 수천억의 예산이 들어가고 있고, 뇌줄중과 암치료에 쏟아지는 천문학적인 비용도 속수무책인 실정이다. 게다가 개인적 부담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격과 같다.

만약 신약개발사업에 직접 뛰어들어 난치병과 성인병 치료약을 개발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보람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고민한다. 국민생활의 어렵고 힘든 일도 풀어나가야 하겠지만, 사람을 살리는 일에도 팔을 걷어부쳐야 하지 않겠는가? 몸은 하나이고 한 일은 태산 같으니 힘써 노력할 따름이다.